한국은 두 번의 아시안컵 우승(마지막 우승은 1960년)을 기록하고 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손흥민(토트넘 홋스퍼 주장)과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전드)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을 배출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역대 최고 축구선수 10인을 소개하겠습니다.
한국 역대 최고 축구선수 : 설기현
국제 경기 출전 기간: 2000-2009
정선에서 태어난 윙어 설기현은 벨기에의 로열 앤트워프와 안데를레흐트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후, 잉글랜드로 이적하여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레딩, 풀럼에서 뛰며 프리미어리그에서 60경기에 출전했습니다. 이후 K리그로 돌아와 2011년 K리그컵 우승을 차지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설기현은 국가대표팀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준결승에 진출한 한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그는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대전에서 열린 경기에서 88분에 동점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도왔습니다. 설기현은 대한민국 대표팀으로 총 82경기에 출전한 후, 2009년에 국제 무대에서 은퇴했습니다.
한국 역대 최고 축구선수 : 이동국
국제 경기 출전 기간: 1998-2017
이동국은 K리그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와 함께 매우 성공적인 클럽 경력을 쌓았습니다. 포항 스틸러스에서 경력을 시작한 그는 미들즈브러로의 실패한 이적 후 성남 일화에서 경력을 부활시켰으며, 이후 전북으로 이적하여 11년 동안 리그 우승을 9번 차지하며 영광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동국은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서 100경기 이상 출전했지만, 그의 국제 경력은 혼재된 운명을 겪었습니다. 1998년 월드컵에서 출전한 이동국은 고국에서 열린 2002년 월드컵에서는 거스 히딩크 감독에 의해 제외되었습니다. 팬들 사이에서 “게으른 천재”로 불리던 그는 이후 한국의 준결승 진출을 이끈 2002년 월드컵 경기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고 인정했습니다. 이후 2006년 월드컵에서는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으며, 2010년 월드컵 16강전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는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한국 역대 최고 축구선수 : 황선홍
국제 경기 출전 기간: 1988-2002
포워드 황선홍은 K리그에서 경력을 시작하는 대신 독일의 바이어 레버쿠젠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2군에서 한 시즌을 보낸 후, 1993년 고국으로 돌아와 포항 스틸러스에 합류했습니다. 그의 가장 성공적인 시기는 일본 세레소 오사카에서 보낸 시간으로, 1999년 J리그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황선홍은 1988년, 무명 대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깜짝 발탁되어 아시안컵에 출전하면서 한국 대표팀에 데뷔했습니다. 그는 대회에서 일본과 이란을 상대로 골을 기록하며 팀을 도왔고, 한국은 결국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결승전에서 패배했습니다. 1994년 월드컵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2002년 월드컵에서는 폴란드를 상대로 결승골을 기록하며 대한민국의 첫 월드컵 본선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또한, 그는 8강전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첫 번째 킥을 성공시키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한국 역대 최고 축구선수 : 기성용
국제 경기 출전 기간: 2008-2019
기성용은 중원에서 경기를 조율하는 미드필더로, 셀틱, 스완지 시티, 선덜랜드, 뉴캐슬 유나이티드 등 영국에서 확고한 경력을 쌓았습니다. 패스 정확도와 경기의 리듬을 조절하는 능력으로 잘 알려진 기성용은 2013년 스완지 시티가 리그 컵을 우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2013-14 시즌 스완지의 유로파리그 16강 진출에도 기여했습니다. 그는 2020년 고향팀 FC 서울로 복귀하여 자신의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국제적으로, 기성용은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100회 이상 출전했으며, 3번의 월드컵에 출전하고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맡았습니다. 골 결정력으로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아시아의 호랑이로서 110경기에서 10골을 기록하며 2019년에 국가대표에서 은퇴했습니다.
한국 역대 최고 축구선수 : 홍명보
국제 경기 출전 기간: 1990-2002
펠레 같은 전설적인 인물이 당신을 칭찬한다면, 당신은 뭔가를 제대로 해낸 것입니다. 홍명보는 뛰어난 수비수로, 그의 놀라운 일관성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2004년 펠레가 선정한 FIFA 100 리스트에 포함된 홍명보는 대부분의 클럽 경력을 일본과 한국에서 보냈으며, LA 갤럭시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 2004년에 은퇴했습니다.
‘영원한 리베로’라는 별명을 가진 홍명보는 한국 축구의 아이콘으로, 아시아 최초로 4회 연속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1990년을 시작으로 1994년과 1998년 월드컵에서의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며, 2002년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선발되어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4강에 오르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는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결승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홍명보는 2002년 선수 생활을 마감하며 한국 국가대표팀에서 가장 많은 출전 기록을 가진 선수로 은퇴했습니다.
한국 역대 최고 축구선수 : 이영표
국제 경기 출전 기간: 1999-2011
지구력, 기술, 그리고 다재다능함으로 잘 알려진 이영표는 선수 경력 동안 유럽의 주요 클럽들에서 활약했습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후, 이영표는 2003년 PSV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하여 전 한국 국가대표팀 감독인 거스 히딩크와 재회했습니다. PSV에서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진출에 기여한 후, 이영표는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하여 마틴 욜 감독 아래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쳤고, 2008년 리그 컵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1999년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이영표는 2000년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잡았습니다. 2008년에는 한국 축구 역사상 일곱 번째로 A매치 100경기 출전을 달성한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2011년 아시안컵을 끝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으며, 이 대회에서 한국은 3위를 차지했습니다.
한국 역대 최고 축구선수 : 김민재
국제 경기 출전 기간: 2017-현재
김민재는 현재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거대한 센터백입니다. 김민재는 중국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후 유럽 무대에 진출하여 페네르바체와 계약했으며, 단 한 시즌 만에 이탈리아의 거대 클럽 나폴리로 이적했습니다. 그의 탄탄한 수비력은 나폴리가 30년 만에 첫 스쿠데토(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를 차지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김민재는 5,800만 유로(약 829억 원)에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며 아시아 역사상 가장 비싼 선수로 기록되었습니다.
김민재는 2017년 국가대표팀에 데뷔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2018년 FIFA 월드컵 출전이 좌절되었습니다. 그러나 2018년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끈 후, 김민재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의 모든 경기에 출전하며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무실점을 기록해 한국이 16강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한국은 16강에서 브라질에 패했지만, 김민재의 활약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한국 역대 최고 축구선수 : 박지성
국제 경기 출전 기간: 2000-2011
박지성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PSV 아인트호벤으로 이적한 후 유럽에서 가장 꾸준한 활약을 펼친 선수 중 한 명으로 성장했습니다. 네덜란드 리그에서 두 시즌 동안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박지성은 그당시 최고의 감독과 팀으로 알려진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는 7시즌 동안 올드 트래포드에서 200경기 이상 출전하며 4번의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2008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박지성은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의 두드러진 활약을 펼쳤으며, 특히 세르지우 콘세이상과 비토르 바이아를 제치고 득점한 솔로 골은 대회 최고의 장면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 골 덕분에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박지성은 그의 에너지 넘치는 플레이와 팀을 이끄는 역할로 인해 한국 대표팀에서 세 번의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 골은 2010년 월드컵에서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기록되었으며, 한국이 다시 한 번 16강에 진출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한국 역대 최고 축구선수 : 차범근
국제 경기 출전 기간: 1972-1986
차범근은 유럽 무대에서 다른 한국 스타들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한 선구자였습니다. 1978년에 다름슈타트로 이적한 후, 그는 다음 시즌에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하며 첫 시즌에 UEFA컵을 우승했습니다. 당시 애버딘 감독이었던 알렉스 퍼거슨이 “막을 수 없는 선수”라고 칭한 차범근은 결정적인 골들로 인해 분데스리가 시즌 팀에 선정되었습니다. 그는 그 후 한 해 뒤에 DFB-포칼(독일 컵)을 우승했고, 1983년에 바이엘 레버쿠젠으로 이적했습니다. 1988년에는 UEFA컵 결승전에서 에스파뇰을 상대로 극적인 동점골을 기록하며, 클럽이 첫 유럽 타이틀을 획득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차범근은 1989년에 은퇴했으며, 그의 경력 동안 단 한 장의 옐로 카드만 받았습니다.
국가대표로서 차범근은 한국의 역대 최다 출전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136경기 출전과 58골로 한국의 역대 최다 득점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197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이 우승하는 데 기여했으며, 1972년 아시안컵 결승전에 도달한 팀의 일원으로 활약했습니다.
한국 역대 최고 축구선수 : 손흥민
국제 경기 출전 기간: 2010-현재
현재 아시아 축구선수 중 가장 위대한 선수로 손꼽히는 손흥민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슈퍼스타이며, 그의 조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우상 차범근처럼, 손흥민도 바이엘 레버쿠젠에서 활약했으며, 87경기에서 29골을 기록한 후 2015년에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했습니다. 현재 클럽 주장으로서 손흥민은 북런던 팀에서 400회 이상의 경기에 출전했으며, 프리미어리그에서 100골 이상을 기록한 최초이자 유일한 아시아 선수입니다. 그의 골들은 2019년 토트넘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손흥민은 차범근의 역대 득점 기록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으며, 2010년에 대한민국 대표팀에 데뷔한 이후 국가대표로 120회 이상 출전하였고, 2019년 아시안컵과 2022년 월드컵에서는 주장으로 팀을 이끌었습니다. 손흥민의 골 결정력과 리더십은 그를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자리매김하게 했습니다.